蛇(사) / 1969 / 198 x 136 |
수술은 문자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수술 후에도 환골탈태의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얼굴 전체를 거즈로, 붕대로 감은 모습은 간병을 하러온 내 친 자매들까지도
벌벌 떨게했고 육친이 아닌 새언니를 기절토록 하였다.
과장이 아니다.
내 얼굴의 재개발인지 재건축 과정은 압구정동에 있는 국내 최고의 성형외과에서
시술되었다.
성북동에 사시는 부모님에게는 물론 비밀이었다.
수술 때에는 시집간 동생들이 자리를 지켰고 수술이 끝난 후에는 새언니가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간병차(?) 건너왔다.
모두 길건너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행차였다.
머신 플레인과 드릴로 피부와 뼈를 깎는 수술실 작업을 파악하고는 이게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내 자매들은 내가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 치를 떨며 철수를
하고 뒷 감당을 새 언니에게 맡긴 모양이다.
간병인은 따로 두지 못한다는 성형병원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역시 처음에는 무심코 저녁을 잘 먹고 찾아온 새언니에게 마침내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가볍게 평상복으로 병원을 찾아와 보니 중증환자를 다루는 병원이 아니어서
야간 당직도 없었고 복도와 병실은 모두 미등만 어슴프레 켜진 상태였다고 한다.
병실 번호만 알고 찾아 들어온 독실에는 대형 산소통과 무슨 기구가
흐릿한 불빛 속에서 두 팔을 번쩍 쳐든 상태로 서 있었고 그 아래 침대에는
몇천년 전의 이집트 미이라가 말도 못하고 눈빛만 번쩍이며
무덤 속, 현실(玄室)의 야간 틈입자를 노려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미이라도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형체 정도라면 준수한 편이리라.
새언니가 본 미이라의 얼굴은, 인간의 신체가 어쩌면 저렇게도 과대하게 부풀어
오를수 있을까,
보자마자 기절 끝에 나중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 다시 상기해 보아도 불가사의한
크기로 불어터져 있더라는 것이다.
거즈와 붕대로 처리된 그 거대한 이름모를 괴물 덩어리 윗 부분 가운데에서
무섭토록 크게 찢어진 구멍 속의 검은 눈알이 이리저리 구르는 모습은 사람의
얼을 뽑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새언니는 저녁에 배달해 먹은 북경 오리고기 요리를 입원실 바닥에 있는데로 다
토하고 결국 쓸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날 거울로 내가 나를 보아도 귀신이 따로 없었다.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거즈를 뗄수 있었고, 하여간 반년간은 바깥 출입을
말라는 것이었다.
의학적 금족령과는 별도로 나는 한 달쯤 후부터 가벼운 외출을 하면서 내 얼굴을
이리저리 남들과 비교해 보았는데, 나의 새 얼굴은 정말 거짓말처럼 예전의
반으로 줄어있었고 눈과 코와 입을 위시한 이목구비는 예술이었다.
나이도 정말 열살은 더 젊어보였다.
내 연인과 나의 육체적 나이 차이가 원래 열살이었으니 다시 열살을 벌어서
결국 스무살의 차이를 자초한 셈이 되었다.
그 여기자가 "부적절한 관계" 운운한 것도 이해는 할 만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당신 얼굴 참 곱네."
와인 한병을 다 비워가며 저녁을 맛있게 먹으면서 그는 이 말 밖에는 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성형의 결과를 놓고 우리의 생각이나 대화가 엉뚱하게 흐를 것을
경계하는 그의 지혜로움이었다.
이윽고 와인 병이 비자 우리는 잊었다는듯 황급히 일어나 일산 나의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내 연인의 집은 따지자면 서대문에 있는 아이들과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였는데
우리는 내가 지은 일산의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다.
작업장을 크게 꾸며놓은 내 단독주택은 장흥 쪽의 예술가 마을과도 가까워서
아주 그만이었다.
내 연인이 나가는 신촌에 있는 대학으로의 출근 길도 원만하였다.
다만 분당에 있는 한국 과학 한림원에 회의가 있어서 나갈 때에는 다소 힘이
드는 모양이었으나 그것도 지하철이면 큰 문제는 없었다.
"젊은 애첩을 품은 기분이 어때요?"
잠 자리에 들자 내가 교태를 부리며 허리를 움직여 보았다.
"좀 어색해---."
그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객지에서의 오랜 긴장 끝에다가 "용불용설"도 한 몫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또 얼굴만 뜯어고치면 뭘하나---.
내가 외출 금지 기간중에 운동을 게을리해서 몸을 망가뜨린 탓도 있을
것이다.
탄력이 많이 사라진 내 엉덩이에 대한 자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지극정성이었다.
모든 것은 그의 탓이 아니고 모두 내 탓이었다.
"제가 운동을 게을리 했어요. 몸매 관리가 엉망이죠?"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 사실 난 당신의 원래 얼굴이 좋았어. 그 큰 얼굴을 대하며
나는 아이들 엄마를 잊을 수 있었어.
그런데 이제 얼굴이 반쪽이 되고 보니 병석에 누워있던 그 아내 생각이 나네.
미안해, 여보."
"아뇨, 제가 미안해요.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결정했어요."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오만, 내 성급함, 내 멋대로의 자비---.
사랑은 진정 겸허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정말 사랑은 간절한 마음에서 오는가 보았다.
한참의 싱갱이 끝에 우리는 마음이 통하면서 마침내 큰 성공을 걷우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우리는 전승의 시간을 오래 즐겼고 마침내 피곤한 몸을
만들어서 기분좋게 다시 샤워를 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차 조절이니 제트 래그니 하는 말들도 사랑의 개가를 올린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하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내가 커피를 끓이고 있는데 내 연인은 조간 신문을 들고 들어왔다.
"엇?!"
그가 놀라면서 신문을 확 폈다.
사회면 중간쯤 한 쪽에 이런 글자가 보였다.
"국제 과학 윤리 위원의 탈선---"
그리고 나와 내 연인이 골목 길에서 어제 저녁 깊이 키스를 나누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나와 있었다.
生態(생태) / 1950_1951 / 84 x 6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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