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무척 바쁘다.
휴먼 개발원이란 첫째 몇 백명 단위로 충원되는 신입 사원을 교육하는 기본적
과제가 있고 직원들의 수시 교육, 고객에 대한 봉사 차원의 문화 강좌,
다른 외부 기업으로 부터의 위탁 교육, 심지어 국책 기관으로부터의 맞춤 주문
교육도 있고 우리 본사 임원들을 위한 재충전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런 일들로 바쁘다는 하소연이
아니라 주말 주례에 얽힌 어떤 해프닝이다.
우리 대기업에는 많은 자회사들이 있고 이 곳에 계절마다 충원된 수많은 신입
사원들을 여기 휴먼 교육원에서 교육을 하다보면 수료가 끝난 후에도 그 인연이
지속되는데,
문제는 이 청년들이 때가 되면 모두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주례를 나에게,
그리고 여기 있는 많은 교강사들에게 한다는 점이다.
수료생들은 이때 교강사들 보다는 나이와 직책이 높은 나에게 일차로 오는
것이 당연한 순서여서 몰려 오는 청년들의 숫자는 흔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 좋은 일에, 아니 사실은 개인적으로 피해가 막심한 이 일 때문에 나는 몇가지
도피 전략을 만들어 놓아서, 가령 이미 선약 주례가 잡혀 있다는 식으로 모면을 해
보지만 워낙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 아니 내 사랑하는 청년들을 막을 길이
없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휴먼 교육원에 금년 봄, 지방 대학 출신으로 출중한 인재가 들어왔었다.
그는 법율 지식과 외국어 실력이 대단한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토론술에도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요즈음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토론식 세미나 교육
방식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자체 웅변대회에서도 일등 상을 수상하였다.
졸업 성적은 당연히 최고상 수상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에게 흠이 있다면 집안이 가난하다는 점이었다.
남해의 어느 어촌 출신이었는데 집안이 가난하다는 것은 그가 토론을 할때에
아주 적절하게 구사하는 논리 속에 들어있어서 자연히 알게된 프라이버시였다.
그가 휴먼 교육원을 수료하고 현업 배치를 받아 나간 후, 얼마되지 않아서 나를
찾아왔다.
쌍춘절에 전부터 사귀던 아가씨와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기업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이 청년의 청을 받느냐 마느냐로 잠시
고민했으나 일단 받아들였다가는 이번에 그와 함께 수료한 동기물의 물밀듯한
청탁이 예상되어서 강하게 거절을 하였다.
물론 주례 선약이 있다는 핑게였다.
그러자 그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그 선약한 사람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자기처럼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내가 반드시 자비를 베푸어야하고
자기보다 사정이 나을 것이 분명한 그 선약의 사람은 얼마든지 다른 대타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논리였다.
그 설득은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입장이 곤란해졌다.
사실은 선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프라이버시를 공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고 어물어물하였다.
그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읍소하다가 마침내 믿는다며 돌아갔다.
그리고는 연락이 서로 없었다.
나는 처음 며칠간은 조마조마하였으나 끝내 연락이 없어서 겨우 안도하는
분위기였으나 공연히 젊은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은 심정이 되어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얼마 후 그로 부터 청첩장이 날라왔고 나는 예에 따라서 작은 돈을 우편환으로
붙일 참이었다.
그런데 본사의 교육관련 임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부터는 각 영역별, 자회사별로 휴먼 교육원에서 최고상을 받고 수료한
사원이 결혼을 하면 본부 임원이 참석을 하여 축하하기로 했으니 교육원의
책임자인 나도 참석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강제적 처사가 어디있느냐는 불평은 목구멍 밑에서만 오락가락하였고
나는 그 휴일의 모든 가정적 약속을 파기하고 예식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못한 자리이다 보니 본사 임원이 나온다는 데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작 시간에 임박하여서 가까스로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신랑은 여봐란 듯이 나를 맞았고 미리 와있던 임원은 못마땅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예식장에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식은 금방 시작되었다.
비어있던 연단의 주례석을 보니 머리가 훌렁 벗겨진 풍채 좋은 노신사가
앉아있었다.
어쨌거나 능력있는 신랑이라 어디에서 좋은 주례를 잡아다 놓은 모양이었다.
신랑이야 원래 씩씩하였고 신부도 예뻤다.
그리고 주례사도 판에 박은 것이긴 해도 하여간 괜찮은 편이었다.
본부 임원은 식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에 내게 끝까지 있으라는 부탁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어쩔수 없이 끝까지 있어야할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식은 무사히 끝났다.
여기서 "무사히"란 그 때까지는 무사하였다는 말이다.
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주례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내가 안도하며 귀가를
서두르는데 신랑이 헐레벌떡 나에게 달려왔다.
"왜 주례를 하지 않으셨나요?"
"이 사람아, 내가 언제?"
"제가 본사 임원이 나오시도록까지 조치를 해서 원장님이 꼭 주례를 서시도록
애를 썼고 그래서 원장님이 이렇게 나오셨잖아요."
"세상에! 그걸 미리 구체적으로 말했어야지---. 그리고 아까 주례가 있었잖은가,
그 분은 누군가?"
"이 예식장의 단골 무슨 주례 상무라나 그렇답니다."
"누가 부탁을 했을 것 아닌가?"
"저는 처가에서 부탁한 괜찮은 분인줄 알았고 처가에서는 당연히 내가 모신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이거 이런 경사에 주례 상무가 뭡니까, 세상에!"
"세상에!"라는 표현은 이 경우 누구의 것이 더 올바른 것인지 나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하여간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연단으로 다시 가서 섰다.
내 가슴에는 꽃이 꽂혔고 신랑과 신부의 뒤에 서서 사진을 우선 박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신랑의 능력이 참으로 돋보이는 순서였다.
신랑은 예식장에다가 강한 어필을 하였다.
누가 이런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주례를 바꾸었느냐는 것이었다.
예식장에서도 처음에는 강하게 나갔으나 결국 그의 논리와 주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다음 주말에 나는 이 곳 연단에 서서 녹화를 위하여 주례사를 새로 하기로 했고
신랑과 신부는 신혼 여행을 갔다와서 예복과 면사포를 다시 입고 그 앞에 서기로
했다.
신랑 신부의 부모님도 다시 등장해야 되었으며 예식장은 주말의 황금같은
시간대에 한 시간 손해를 감수해야 되었다.
예복과 면사포를 다시 빌리는 값도 당연히 예식장의 몫이었다는 후문이었다.
(끝)
*어제 어떤 호텔의 예식장에서 주례를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에 이런 가정을
해 보았답니다.
팩션 설정에 무리는 없었는지요?
쌍춘절에 웨딩 마치를 다시 한번 울립니다.
(다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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