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 화백의 판화, "과수원")
우리가 조금 걷는데 실비가 뿌려서 어느 집 추녀로 들어섰다.
"어? 이대원 화백 그림이네."
그가 쇼 윈도우를 들여다 보더니 큰 판화 앞에서 탄성을 질렀다.
한 7-80호는 될성싶은 대작이었다.
우리는 그림집으로 들어갔다.
액자와 표구를 겸한 집에 생각보다 중견화가들의 그림이 많았다.
주인은 이 곳도 역시 여사장이었다.
작업을 하다 나왔는지 옷에 풀같은 것을 여기 저기 바르고 나왔다.
그녀로 부터 요즈음 경기를 회복하고 있는 화랑계의 소식을 들었다.
장사도 좀 되고 그림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대원의 이 판화가 얼마요?"
그가 표정 관리도 하지않고 대뜸 밖에서 보고 들어온 이대원 화백의 그 그림 앞에
서서 그림값을 물었다.
"300만원인데요---. 이 화백이 얼마전 작고한 후에 그림이 동이 났어요."
"판화인데 전체 몇 장 중 몇 장째 찍은거라는 표시가 없네요?"
내가 무식한체 물었다.
아니 정말 무식해서 물었다.
"아, AP판이라고 하지요. Artist Proof라고 원래는 전체의 한 십 퍼센트 정도를
미리 시험 찍으면서 번호를 매기지 않지요. 요즈음은 나중에 한 십퍼센트 정도
여벌로 더 뜨는 식으로 관행이 되어버렸지만요."
"번호 매긴 것과 비교해서 값은 어때요?"
"매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거 삽시다. 얼마까지 됩니까?"
그가 들뜬 얼굴로 표정 관리도 하지않고 그림 값을 물었다.
"300만원이라니까요---. 판화 수준으로는 쎄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양반이
돌아가시고 나서 값이 많이 떴어요. 이 그림도 며칠 못가 나갈 것같아요."
풀칠을 옷 여기저기에 무친 여주인의 표정이 진지하여서 바람을 잡는 건 절대
아닌듯했다.
한순간, 내 친구가 조금 망설이자 여사장이 공격적으로 나왔다.
"카드 결재도 됩니다. 현찰이면 10퍼센트 할인도 해 드리고요."
"그렇다면 270만원인데 그러지 말고 끝자리를 정리해서 250만원에 합시다.
내가 이틀 후에 돈이 들어오니까 그때 모두 결재하기로 하고 지금은 수중에
오만원 밖에 없군요. 그걸로 계약금 합시다."
내 친구가 적극적으로 화답하자 흥정은 성립되었다.
어쩌는가 하고보니 내 친구는 정말 주머니를 털어서 오만원만 계약금으로
걸었다.
이틀 후에 결재가 되면 택배는 기본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흐린 날씨가 가랑비를 데려왔다.
우리는 근처 안동 국시 집에서 점심을 떼웠다.
"놀랍소이다. 그렇게 이대원의 그림이 좋아요?"
내가 물었다.
"그럼요. 저 이대원의 과수원 시리즈를 어떤 사람 집에서보고 안달이 나서
못견디겠더라고요.
내가 돈많은 CEO도 아닌데 그림이 좋으면 덜컥 사고야 말지요."
"나는 그런 열정도 없고 그럴 안목도 없어요. 우린 같은 딜레탄트 동족이라고만
생각했지 거기에도 격과 급수가 있는 줄은 몰랐네---."
"에이 비행기 태우지 마시오."
나의 놀라움을 그가 겸손으로 받았다.
점심 후에도 우리는 지향점 없이 인사동을 어슬렁 거리다가 천상병의 찻집,
"귀천"에도 들리고 마침내 교보에서 신간을 두루 섭렵하다가 지하철에서
헤어졌다.
나는 삼각지에 있는 "국방 회관"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중년에 이른 ROTC 우리 기수들의 친목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내 화원의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차원으로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ROTC는 내 젊음이 투사된 "추상, 보통, 고유 명사"이자 내 자존의 불꽃이었고
다시 찾아올 길 없는 청춘시절이었다.
우리는 시간나는 데로 이렇게 모여서 안부도 전하고 초청 명사들의 강연도
듣곤 하였다.
이날 모임은 우리와 같은 기수인 서울의 어떤 대학 생물학 교수의 건강 강좌를 듣기위한
행사였다.
제목은 "새로운 건강 패러다임"이었다.
웰빙과 건강이 하도 자주 화두가 되어서 그런가, 인기있는 제목치고는
동기들이 오히려 많이 오지 않았다.
연사로 나온 생물학 교수는 적은 인원에 다소 낭패하였는지 거창하고 고상한
부분은 다 빼고 결론만 간략하게 추리겠다고 하면서,
"동기생 여러부운~~~, 오줌을 마십시다."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는 이름난 대학의 현직 교수였으며 준비해 온 소책자에도 자기의 직함과
이름을 명명백백히 올려 놓은 것으로 봐서 싱거운 소리를 팔러 온 것은 정녕
아니었다.
더우기 자기 오줌을 먹으라고 한다면 무얼 팔아먹겠다는 것은 아니고
돈벌이를 하자는 것도 아닐터였다.
그의 주장과 팸플릿에 따르면 오줌 속의 유로키나제 성분은 만병 통치였다.
감기와 같은 소소한 병을부터 중증 성인병까지 오줌으로 낫지 않는 병은 없다는
것이었다.
"더럽고 냄새가 나잖아."
누가 저녁 먹으며 무슨 소리냐는 듯이 불평을 하였다.
"남의 오줌메서 냄새가 나지 자기 오줌은 냄새도 곧 동화되어 모르게 되요.
그리고 자기 오줌인데 뭐가 더러워?"
교수가 소신의 목소리로 청중을 윽박질렀다.
"아이들 오줌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어른들 오줌이나 남의 오줌은 좀
그렇잖아?"
누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소리야, 마누라 오줌도 좋으니 생기는 데로 마셔. 감기에 걸리면 코로
흡입하여 목으로 그냥 넣고 삼키는거야. 심장병, 고혈압, 당뇨, 낫지 않는 난치병이
없어.
이거 사실은 서양놈들이 돈벌이 할려고 배설물은 철저히 버리게 하고 저희들은
거기에서 약을 추출하여 돈주고 사 먹게 한거야."
그의 이력을 보니 "존스 홉킨스" 박사였다.
"여보슈, 그렇게 좋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들어보슈."
별까지 달았던 역전의 사령관이 크게 외쳤다.
"그럽시다."
그가 페이퍼 컵을 갖고 와서 뒤로 돌아서서 자기 오줌을 받더니 한 컵 분량을 다
마셨다.
나중에 물로 입을 부신 것은 물론이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조되는듯 하였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오줌을 먹다니---."
그런 낭패스런 기운이 자리를 감돌더니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신도시로 가는 우리 카 풀 동기들에 합류하였다.
도합 넷이 한 차를 타고 도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가 고속 도로에 오르고 얼마 달리지 않아서 옆자리의 친구가 괴로워했다.
"아까 맥주를 너무 마셨나, 오줌이 마려워 죽겠네. 어떡허지? 고속도로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아, 마시면 되잖아.".
모두들 입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싸고 말지 그걸 어떻게---."
괴로워하는 동기가 우는 소리를 냈다.
"마신다면 큰 컵을 주고 싸겠다면 그냥 간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얼렀다.
"컵 좀 줘, 마실께"
무슨 용도인지 큰 페이퍼 컵이 운전석 밑에서 나왔고 괴로운 친구는 오줌을
누며 소생하였다.
오줌이 큰 컵에 거의 차자 그는 황급히 윈도우를 열고 그걸 밖으로 버렸다.
큰 컵과 오즘이 차를 한참 따라와서 마치 차가 오줌을 흘리며 가는듯했다.
아침부터 쥐오줌 고양이 오줌 이야기가 나오더니 하루의 끝도 오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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