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남해 가는 길 (여섯번째)

원평재 2006. 11. 26. 21:09
 "아, 할머니께는 점심도 드리지 못했군요? 그래도 됩니까?"

중년 신사가 뉴욕 아씨를 다시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복귀시키며

유감의 뜻과 깎듯한 예의를표했다.

"아이, 걱정마세요. 말씀 들으니 선생님께서 점심 독촉하시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뉴욕 아씨께는 매번 점심값을 빼드리지요. 독일 마을에 가시면 소시지 겯들인 식사가 끝내주거든요.

선생님들은 곧 미조 해변 끝 쪽 식당으로 모셔서 죽방염으로 잡은 멸치

쌈밥을 대접할께요.

죽방염은 대나무로 만든 큰 고깔 모양의 그물인데 그렇게해서 잡은 멸치는

남해 특산의 크고 맛있는 특징이 있고 또 잡을 때 상처도 나지 않아서

떼깔이 좋다고 인끼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서울에서 따라온 가이드 아가씨가 나서더니 달변으로 설명을 하고 일행을

아담한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정말 아무데에서나 보기는 힘든 큰 멸치가 삶은건지 조림을 한건지 큰 양은

냄비에 수북이 담겨서 식탁마다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고,

갖은 양념 그릇과 여러가지 채소들이 이름도 모를 젓갈 종류와 함께

또한 식탁을 장식하였다.

이 시대에 누가 밥을 탐하랴만 여행객의 빈 속에 마음껏 퍼먹도록 큰 양푼

대야같은 데에 흰밥과 오곡밥이 고봉으로 나오니 모두들 푸짐하고 너그러운

마음들을 오랜만에 맛보는듯 하였다.

풍성한 마음이 생겨서 그런가, 그 식당에서 사람들은 따로 파는 마른

죽방멸치를 모두 듬뿍 샀다.

시중의 멸치값보다도 몇배 비싼 가격이었다.

 

그 식당은 죽방 멸치 쌈밥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유자 막걸리"라고 하는, 유자 열매를 누룩으로 띄어 만들었다는 술이

이름은 거칠었지만 내용은 맑은 청주처럼 고운 빛갈로 식탁마다 한병씩

나왔는데 맛에 취한 여행객들은 이윽고 개인 부담으로 더 시켜서 마시고

또 마시며 기분을 냈다.

 

"유자 막걸리라면 제가 또 고두현 님의 유자 시를 읊습니다.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그런디, 항아리는 두고 오셨군요."

 

서해심이 섬진강 너머 동네의 사투리를 시어의 낭송 끝에 섞어쓰며

김범수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 모두 유자향의 고운 술에 얼굴이 잘 익어있었다.

"비밀도 다 탄로났는데 사람들이 탓을 하지 않으셔서 고맙지요, 뭐. 뒷

좌석에 잘 모셔두고 왔습니다."

"정희를 아시지요?"

서해심이 이제 대단할 것도 아니라는 듯이 김범수에게 망설임없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김범수가 약간 우물쭈물했다.

 

 

 

 

 

 

 "아, 정희가 기어코 죽었군요."

"네---."

"제가 문인협회 경남 지부를 맡으며 가끔 서울을 다녔어요. 그 때마다 정희

에게 연락을 했으나 만난건 몇번 되지 않았지요.

예쁜 얼굴이 많이 상했으나 패기는 옛날 같았고---."

"그게 다 허세였지요. 우린 아무 것도 없는걸요."

김범수의 말이었다.

"강남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서도 한번도 데리고 가지는 않더군요."

"강남이라니요. 우리는 평생 경인 전철변에 전세살이이지요."

"그래도 전화는 항상 555국, 강남 전화국이던데요. 제가 전화는 자주

걸었어요. 최근에 특히 정희가 자꾸 죽는다고 하여서---."

"그 전화 번호는 보험 회사 점장하면서 받은 것이지요. 전화는 영업상

점장에게 따로 나오지만 방은 여럿이 함께 쓰지요. 그래도 그게 무료이고

강남 전화라서 외근이 아닐 때에는 휴대폰 그만두고 그걸 이용한답니다."

 

"그게 그렇군요. 그건 어쨌든 제가 선생님 얼굴을 사진으로는 본 적이

있어요.

작년 어느 날인가 어린 따님이 가운데에 있는 사진을 갖고 나왔더군요.

선생님 젊을때 모습이었는데 사실 지금 그 얼굴 기억은 없지만, 아까부터

선생님 모습을 보며 무언가 느낌이, 직감이 오더군요."

"제가 최근에 더더욱 팍삭 늙었습니다."

"반년 전에 정희가 자기는 곧 죽을 것 같다고 전화를 했어요.

우리의 고향이, 남해가 그립다고도 했어요.

생활이 너무 고달프다고도 했고---. 서울 간 정희가 그런 말 한건 그 때가

처음이었지요."

 

"그런 이야기를 그나마 하던가요. 제가 마누라를 안건 동평화 시장 꼭대기

층에서 였지요.

나는 대학생 위장 취업자였고 정희는 그때 미싱사로 달려라 삼천리,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고 있었구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의거 이래, 달려라 삼천리, 그 미싱사들의 상황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래도 밑바닥 인생이었지요.

우리 둘이는 눈이 맞아서 살림을 시작하면서 오바로꾸와 미싱 자수

쪽으로도 자리를 옮겨보고 했지만 개미 체바퀴 돌듯한 생활은 나아질

여지가 없는 데에다가 제가 위장취업이란게 탄로가 나서 둘다 쫓겨났지요.

그 바닥 근로자 민주투쟁도 시들해졌고 그래서 정희는 생활 설계사,

그러니까 보험업을 시작했으며 나는 급한데로 서적 외판을 했어요."

"요새 무슨 서적 외판이 되나요. 제가 그쪽은 좀 알지요만---."

서해심이 딱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네, 잘 아시겠지만 인터넷 시대에 누가 책을 사봅니까. 또 책을 사도

인터넷 주문 체제가 되고 보니 저는 완전히 손을 들어버리고 집안 살림과

아이 학교 보내는 책임을 맡은 꼴이 되고 말았지요.

다만 아내는 영업 실적이 좋아서 표창도 받고 인센티브도 받고 한동안

잘나갔지요.

내친 김에 욕심 아닌 욕심이 생겼는지 점장을 하며 주로 법인 보험에

매달렸어요.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지요."

"법인 보험이요?"

"네, 법인체에도 화재 보험에서 부터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하는 의무 보험

제도가 많지요. 잘하면 한껀 만으로도 대박이 터진답니다.

총무과장, 법인과장, 경리과장 등이 로비의 대상인데 이때 남녀간에 사고를

칠 수가 있나봅니다.

어떤 재벌회사의 괜찮은 과장과 정희가 사랑을 했어요. 나는 그때 완전히

망가져서 술이나 퍼마시고, 그래도 집안에서 밥과 빨래 같은건 도맡아서

하던 때였지요.

한때 노동운동을 현장에서 해내던 이상주의자가 완전히 성격이나 정신이

파탄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정희가 느닷없이 이혼을 해 달라고 그러더군요, 작년 이맘때였어요.

딸 아이도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면서---."

 

"아, 그때가 제게 사진을 보여줄 때였나보군요, 세상에!"

"놀랄 것도 없지요. 당시 나는 너무나 심신이 망가져서 정희가 제대로

진정한 사랑만 새로하고 있다면 그냥 보내주고 싶었어요."

그는 팻트 병에 든 유자 막걸리 하나를 다시 따서 서해심에게는 작은

잔으로 채워주고 자신은 맥주 컵에 잔뜩 부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제가 술을 끊었다가 다시 입에 대는군요. 하여튼 아내와 그 중년 과장과의

사랑은 진정한 모습이었어요.

과장은 상처를 했더군요. 남의 부인과 자식을 빼앗는다는 자책감에

괴로워도하고 그냥 그런 현상을 유지하였으면 하는 가련한 도둑놈 심뽀도

간직한 이 시대의 불운한 중년이었어요."

 

"만나 보셨군요?"

"그럼요, 술도 두어차례 마셨지요. 하지만 어찌 처음부터 그랬겠습니까.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였지요."

그가 또 팻트 병을 기우려 유자 술을 하나 가득 맥주잔에 따루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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