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팩션) 남해 가는 길 (여덟번째 - 끝)

원평재 2006. 12. 3. 22:35
 

관광 버스는 금방 금산 통합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그들은 이어 작은

승합차를 타고 보리암 입구까지 올라갔다.

"저기 상주 해수욕장 쪽으로 산을 오르면 화강암 산세와 이성복 시인의

시상을 그대로 느낄수 있지만 시간이 없고 또 힘이 좀 들지요."

서해심은 금산 보리암의 유래를 승합차 안에서 설명하며 다음 기회에는

일박 여정으로 보리암을 걸어올라가라고 권유하였다.

 

그들은 이내 승합차에서도 내려서 머지않은 보리암을 향하여 걸어

올라갔다.

단단하고 당당하면서도 백설기 떡처럼 부드럽게 보이는 화강암은 그들을

오래 기다렸다 맞이하는듯 원근감도 없이 그들의 앞에 문득 서있었다.

햇볕을 받아서 빛나는 화강암을 그들의 머리에 이고 올라가는 순례자의

형상을 그들이 만들었다면 그들은 참 축복받은 순례여정에 있었다.

거기 금산에 솟아있는 화강암이 이루고 있는 자연 조형의 경이적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찾기 힘든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그 길에 오른 모든 순례자들은 놀라운 화강암의 위용에

모두 경건한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서해심 시인이 김범수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였다.

"아니, 항아리는 차에다 두고 오셨나요?"

"네."

"여기 어디에 뿌리실려는 생각이 아니었나요?"

"원래는 그랬지요. 그런데 서 시인의 고고한 모습에다, 또 저기 멀리서

부터 본 남해 물미해안과 금산의 범접 못할 아름다움, 또 저 대리석 보다

더 빛나고 웅혼한 화강암 형상을 보니 속세의 정희를 여기에 뿌린다는게

너무 과한 욕심같네요.

도루 갖고 올라가렵니다."

김법수의 대답이었다.

 

"세상에! 그러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속세니 뭐니라고 말씀하는 분들치고

자신이 진정 속세에 있는 속인이라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최소한 세상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억울함이라도 가득한 마음입디다.

선생님도 그렇게 속좁게 옥은 생각은 마세요.

정희는 저 항아리 속에서 이제 아무 자유의지도 없잖아요. 오로지 선생님의

마음에 달려있는 가련한 뼈가루이잖아요.

제가 한가지만 더 간곡하게 말씀 드릴께요.

저와 남편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요.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젊을때 연애를 하면서 아이를 몇번 지웠는데

그게 까탈을 부렸나 봐요.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잖아요. 아마도 그게 빌미가 되었는지 저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우리 부부는 오래동안 서로 원망이 사무쳤답니다. 서로 상대의 탓을

하였지요.

남편은 아이를 얻는다며 바람을 피고 돌아다녔고---.

제가 견딜 수 있었던건 어쩌면 유배지에 관한 시로 일관한 고두현 시인의

시를 외우면서, 또 제 자신 남해에 관한 습작 수준의 시를 지으면서

세월을 엮은 덕분인지도 모르겠군요.

 

하여간 그렇게 원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남편이 그 방면의 무슨 몹쓸 병에

걸리더라구요.

치료는 되었으나 그 사람 역시 아이를 생산하지는 못한다는 의사의

판정이 나오면서 우리는 다시 사이가 회복되었지요. 

우습죠, 세상사.

저도 전쟁치듯 살아 온 인생이랍니다. 

이 아름다운 남해에서 가장 끔찍하게, 정말 세속적으로 살아왔다니까요.

제가 그렇지만 않았어도 정희와 좀 더 일찍 만나서 다른건 몰라도 우애와

우정은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정희는 사고든 자살이든 그런 상태에 빠져들지 않았을지 모르며

투병 생활에서도 승리하였을지 모르지요.

죄송하지만 정희를 지금 그런 식으로 대접하진 마세요. 이제껏도 참 잘 해

오셨잖아요."

서해심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김범수에게 좁은 소견은 버리라고 간청

하였다. 

 

"아니, 그래도 갖고 올라가렵니다.

오해는 마시구요. 제 마음 이제는 다 풀렸다니까요.

제가 다시 안고 올라가겠다고 표현을 바꾸겠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여행을 내려올 때는 별 생각없이 그저 아내를 고향 땅에

뿌려주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발을 했지요.

제 생각을 듣고 그 과장은 그렇다면 저 유명한 관음 사찰인 보리암에 

위패를 봉안하는게 좋겠다고,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더군요.

저는 그저 남해 바다나 절간 근처에 유골이나 뿌리겠다고 왔지요.

하지만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아내의 아름다운 고향을 보는 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분한 생각이 치밀어 올라와서 아까 드린 말씀데로

이 산천과 해안에 아내의 뼈가루를 뿌려줄 수 없다는 속 좁은 생각과

억울함 같은게 불끈했습니다.

하지만 서해심 시인께서 낭송하시는 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차분히

들으며 또 무언가 밝은 얼굴에도 애조가 있는 조용한 말씀 속에서 제가

크게 깨닫고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김범수도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손수건으로 훔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여기에 제가 아내의 뼈가루를 뿌리고 올라 가면 저는 아내를 영원히

내다 버리고 가는게 아닌가요.

정말 저는 다시는 아내를 생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소스라치게 들었어요.

우리가 사는 경인 철로변에 작은 쌈지 공원이 있지요. 거기 어디에 아내의

안식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그럼 이 쪽에 직접 위패를 봉안할 생각은 없었나요?"

"절에 다니지도 않던 사람을 그러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겠지요.

또 돈도 몇백만원 든다는데 제 형편에 그럴 능력도 못되고요.

다만 그 부분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돈이 좀 있는 과장이 언젠가 내려와서

할 뜻을 비치데요.

천도의식 같은 데에 유골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겠지요.

과장이 남해에 대해서 갖는 관심도 보통이 아니었어요.

정희는 과장에게도 유년과 청춘 시절, 그러니까 남해 시절을 다 이야기

하지 않았겠어요.

서로 사랑하던  그 소중한 시간에---."

 

"네, 그런 생각으로 안고 올라가신다면야---. 그래도 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는군요. 죄받을 소리인지 몰라도 정희가 그 오너는 그냥 두고

갔어요---?"

"오너도 좋은 일 많이 했지요. 투병 생활을 할 때에 병원비 다 대어주었고,

사고가 난 뒤에도 더 큰 계약을 소급하여 서명 했다네요.

혜택은 모두 제 딸에게로 돌아간답니다."

 

금산은 과연 명산이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화강암의 기암괴석을 대수롭지도 않은듯 품에 안고

멀리 남해 바다를 고즈넉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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