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이른 봄 행사인지, 늦은 겨울 행사인지 모르겠다.
중등학교 동기회의 "대게 맛 기행"을 따라나섰다.
3년전에 영덕 대게 시식 행사가 있었는데 외유중이어서 참석치 못하였더니
게의 종류에서 부터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서 이번에는 작심하고 따라나섰다.
울진 쪽이었다.
우리는 몰라도 현지에서는 영덕과 울진이 서로 대게의 본향이 자기네 쪽이라고
한다는데, 향토애를 넘어서 경제적인 측면이 개재된 심각한 갈등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쪽이 원조이거나 진짜인지는 관심이 없이 그냥 이번에는 울진쪽,
하는 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대게 먹는 행사라니까 무슨 "몬도가네" 정신에 입각한 것은 아니고 문화행사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자 집행부에서 애를 썼다.
(소수 서원 입구에서는 오랜 풍우, 역사의 때깔이 낀 거수, 거목들이 백면
서생의 기를 눌렀다.)
우선 유람 코스가 풍기와 순흥, 소수 서원 답사가 전제 되엇고 이윽고 불영사
탐방이 뒤를 이었다.
저 유명한 불영 계곡을 또 어찌 빼 놓으랴.
첫날 저녁은 힘차게 달린 끝에 덕구 온천까지 가서 묵은 때를 빼고 온천의
정기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 대게를 먹는 행사가 거룩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대게를 큰 게, 킹 크랩 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라고 한다.
살아있을 때에 색갈이 대나무 같고 게의 발도 대나무처럼 쭉쭉 곧고 기품이
있어서 그 속을 빼먹는 맛이 마침내 멋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대게 먹는 여정이라고 대개의 속 맛 파먹고 마치는게 아니었다.
그 다음날은 새벽부터 덕구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온천의 원탕이 나오는
곳을 보고 내려와서 또 온천을 한번 더하고나서 묵호 어시장을 또 보게
되어 있었다.
그런다음 강릉으로 이동하여 저 유명한 초당 두부를 먹고 서울로 올라오는
여정이었다.
상큼한 계획을 동기회 집행부는 또 산뜻하게 진행하여서 주말 여행은
알차게 진행되었고 내 좁은 안목과 식견과 지평도 넓어졌다
가볌게 스냅을 올리며 조금더 부연해 보고자 한다.
소수서원의 백운동 서제는 원래부터 이름이 있지 않던가---.
중국 관광객이 몰려어면서 간자체로 안내문을 달았다. 깊은 한학은 이제
우리 쪽에 있고 그들은 다른 문화, 다른 언어를 체험하는 역사의 단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동북 공정에 따른 역사관은 제국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영주는 부석사 뿐만 아니라 순흥의 문화 유적과 묵밥, 또 기지 떨이라고 하는술 떡으로 유명하다.
순흥을 배경으로는 내가 전에 단편소설을 쓴적도 있었다.
순흥이라는 표지판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이상하게도 아려왔다.
기지 떡 집 앞에 토지 다방이라는 간판이 이색적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시골에는 모두 다방이라는 간판이 아직도 즐비하였다.
불영사(불영사) 들어가는 곳에 천축산 대문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부처의 그림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불영 계곡은 설명이나 사진이 필요없이 유명한 계곡이다.
(산신각 앞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쓸어질듯 누워있었고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픈 사연이 있는듯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황혼이 깔리고 있었다.)
불영사를 내려와서 울진까지 100리 길을 달려갔다. 일행은 타고온 버스를
그대로 이용했고 나와 또 한 친구는 부산에서 와서 이 곳에서 조우한 동기의
밴을 타고 뒤따라 갔다.
내 친구는 엔지니어인데 사진술도 뛰어나고 재주가 많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다른 모든 것을 재치고 그의 인품이 가장 뛰어났다.
울진 대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영 계곡을 빠져나와서 기껏하는 첫 행사가 통째로 삶은 대게를 먹는
것이라니---, 조금 참혹했다.
이 시대의 모든 행사가 그러하듯 노래방이 낀 야간 행사도 있었다.
고 스톱을 하여 주머니 돈의 행방이 달라지기도 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새벽이 되어서 일행은 덕구 계곡을 따라 트래킹을 하였다.
국내외로 유명한 다리를 12개나 걸어놓은 깊은 계곡의 끝은 덕구온천 원탕이
자리하고 있다는데 일행 대부분 처럼 나는 반쯤 올라가다 말았다.
묵호항은 동해시에 속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묵호가 먼져있었고 나중에 그 일대를 확장하여 동해시가
되었다.
어항은 항상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건어물 중에는 쥐포를 대표로 하여 베트남과 중국 산이 많았다.
하긴 생물 중에도 근해에서 잡히는게 얼마나 되랴.
그러나 이 지구촌 시대에 그런 것 따지면 무엇하나.
묵호항은 펄떡이는 생물마냥 활기에 차 있었다.
어부가 그물을 고치고 있다. 그 옆에는 만선 때에 꽂았던 깃발이 다시 펄럭일 날을 기다리며 에라 모르겠다하고 자빠져 있었다.
동해 바닷가에 해신당이라는 당집이 있었다.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가 많은 바닷가에 그런 당집이 많지만 남근을 이렇게 우람하게 세워
놓은 곳은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근원을 따져보면 상상계의 지평이 펼쳐지는 바 없지는 않으나 내놓고 그러는게
조금 안쓰러웠다.
고래 고기라니---. 국제 포경 협회에 가입한 우리나라에서 고래 잡이는
불법이다.
다만 정치망에 걸려서 죽었거나 해변으로 떠밀려온 죽은 고기 등이 팔린다고
한다.
소주와 함께 세가지 부위의 고기를 먹어보았다.
묵호항을 떠나며 "여기는 묵호항입니다"라는 표지를 더욱 선명하게 읽었다.
돌아오는 날의 점심은 강릉의 "원조 초당 두부 집"에서 초당 두부 백반과
맛갈스런 두부 김치로 한판을 벌였다.
"초당 두부"의 유래가 무엇인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원래 초당은 명의 허준의 아호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강릉에는 초당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허준의 생가가
있다고 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무튼 초당 마을에서는 "6-25 전쟁"등을 겪으며 하루 아침에 동네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여서 제사날이 오랜 세월 같은 날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난한 살림이라 제사 상에도 해수로 빚은 순두부를 올리고 그러다가
그 순두부와 함께 밥 장사로 여러 집이 나선 것이 그 시초가 아닌가 한다는
초당 두부집 주인의 아주 겸손한 설명이었다.
인근에 선교장과 매헌당 유적지 등이 있으니 강릉가는 길에 한번 들릴만한
코스가 아닌가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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