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며칠 앞두고 어떤 대학의 운니동 캠퍼스에 갔다가
운현궁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운현궁은 점심 시간 중 무료 개방이 됩니다.
또한 추석 연휴에는 아침 11시 부터 저녁 5시까지 무료개방되고
여러가지 전통 놀이 축전이 있고
직접 참여하여 체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운현궁 고궁 산책 기록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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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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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을 찾기 위하여 피맛골 부터 걷습니다.
이곳도 곧 사라질 운명입니다.
헐리우드 극장 건물 위에 사-춤이라는 광고가 이채롭습니다.
"사교춤"의 약자라기 보다 에둘러 부르는 것 같습니다.
교동 초등학교 옆이 덕성여대이고 같은 공간에 운현궁이 있는 셈입니다.
종 목 | 사적 제257호 | |
명 칭 | 운현궁(雲峴宮) | |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터 | |
수량/면적 | 9,413.23㎡ | |
지 정 일 | 1977.11.22 | |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운니동 98-50 | |
시 대 | 조선시대 | |
소 유 자 | 학교법인덕성학원 | |
관 리 자 | 서울특별시,학교법인덕성학원 | |
일반설명 | 전문설명 | ||
이제 덕성여대 쪽으로 들어갑니다. |
길건너 천도교 수운 회관
운현궁 공식 안내 사이트
운현궁 출입문 | |
매표소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수직사가 있고 여기를 지나 정면으로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운현궁의 사랑채가 보이는데 이 건물이 노안당이다. |
운현궁 전경 | |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1863년 12월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부근의 고개이름(운현(雲峴)) 또는 관현(觀峴)를 따 운현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
수직사 | |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 |
수직사 내부 | |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궁에서 관리가 파견되는 등 거주 인원이 많았다 |
이로당 | |
이로당은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입 구(口)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데 중정이 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있게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현궁 전체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
이로당 | |
이로당은 노락당이 고종의 가례장소로 사용된 후 흥선대원군 일가에서 노락당을 안채로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지게 되자 안채 용도로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주로 여성들이 거주하며 살림하던 공간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
이로당 | |
이로당은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입 구(口)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데 중정이 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있게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현궁 전체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
노안당 | |
운현궁의 사랑채로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한식 기와집으로 처마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遮陽)을 단 수법은 그 시대적 특징이다.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일상에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
노안당 | |
'노안당'이란 현판은 '노자를 안지'하며 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다 |
노안당 내부 | |
운현궁에서 사랑채로 쓰였던 노안당은 대원군의 일상거처였으며 파격적인 인사정책, 중앙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국가주요정책을 논의했던 곳이다. |
노락당 | |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10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고종 3년(1866) 삼간택이 끝난 후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던 곳이자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가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
노락당 | |
노락당은 정면 10간 측면 3칸으로 노안당(정면 6칸 측면 3칸)보다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툇마루 좌우에 방이 아홉 간이나 있을 정도로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
노락당 내부 | |
노락당은 고종과 민비의 가례와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행사 때 사용되었다. |
한가위 잘 쇠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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