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국은 "새시기" 조선족 중견 작가이다.
중국에서 "새시기"라 함은 대략 문화혁명이 끝난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80년대 이후의 문예부흥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작가는 흑룡강 성 출신이지만 대학은 북경에서 마치고 국영 잡지사의 기자와 문화 연구소의
연구원 등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는데 30대 후반에 마침 한국의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초청을 받고 석사 과정을 시작하였다.
이 때가 1994년이니까 중국이 연안지방(沿岸 地方)의 고도성장 지역을 제외하면 아직 산업화의
초보 단계에 있을 때였고,특히 동북지방 조선족들의 처지는 아직도 많이 어려울 때였다.
코리언 드림이 아직도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조선족 사회에서는 서울행이 일종의 신드롬
상태였고 이에 따른 사기와 부정이 횡행하였다.
(기아 자동차의 기술 훈련 학교가 과기대 인근에 있다. 뒷편에 보이는 건물은 교수 아파트)
이러한 때에 한국에서 어렵게 학업 생활을 이어나간 중국 조선족 지식인의 체험적 시각과
감성은 곤혹과 분개와 탄식이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유치함과 소아병적 반응에는 치를 떨 지경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런 느낌을 조금씩 여기저기 신문, 잡지 등에 써서 발표해 나가다가 한국의 출판사,
민예당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몹시 망설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가 대한민국에 온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혜택이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도움의 손길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다소 불법이고 힘은 들었지만 하여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할아버지 나라의 일종의 느슨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유학을 오기 전부터 문화적 차원에서 인연을 맺고 친근하게 지냈던 마음씨 착한
한국의 지인들 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배신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옛 부모의 나라에 온 조선족들이 속으로만 삭이거나 돌아서서 욕을 하는 현실을
공개적으로 앞에서 따지고 드는 길을 택하기로 용기를 내었다.
사실 개인의 입장에서는 후환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 제목은 "우리도 할 말은 있다"라는 매우 소극적인 것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당시 한참 뜨던
"일본은 없다" "---있다", "중국은 없다" "---있다" 식의 센세이셔녈리즘도 노린 모양이었고,
"다른 부분은 결코 수정을 않겠으니 이것만은---"이라고 우기는 출판사의 주장에 종내는
동의를 한 모양이다.
"한국이 있기에 한국은 없다"라고 쓸 수 있었다는 술회를 나중에 하면서 그는 이 제목에 애착을
갖게되었고 잘한 결정이라는 확신도 가졌다.
책이 나오고 나서 그는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수많은 언론기관과 출판사, 그리고 유무명의 시민들이 그에게 비난을 퍼붓기는커녕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언론 매체는 그에게 격려와 함께 우리의 부끄러운 곳들을 지적, 자성하는 특집들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시민들도 메일과 편지와 전화와 직접대면의 육성으로 그의 지적에 공감하고 미안한 말들을 전했다고 한다.
나도 전에 일간지에서 이 책에 관한 소개를 읽고 낯이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읽어볼 기회는 갖지 못했었다.
아마도 당시 인터넷에 너무 몰입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개략적인 이야기들만 흘깃 챙긴 기억이 난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중국은 차별적이나마 엄청나게 성장했고 조선족 사회도 눈에 띄게 많이 나아졌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도 그들이 선대의 조국에 자신들의 뼈를 묻을 생각은 천만에 없어 보인다.
그들이 추억을 간직한 곳은 수심 깊은 송화 강이나 바람 부는 연길의 국자가이지 모멸의 땅, 한국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핏줄"이다.
국적은 달라도 핏줄은 같다.
이 핏줄의 연과 정은 끊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곳에서 느낀 나의 체험적인 느낌이자 실토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잘 살 때 왜 이들에게 좀 더 의연하지 못했던가.
여기 내가 있는 대학에서 3년 전만 해도 조선족 학생과 한국의 교환학생을 외양으로 구별하기가 쉬
웠는데 이제는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윤기 나는 얼굴과 발랄한 몸매에 멋쟁이 티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청춘남녀 가운데에서 얼굴만
보고 누구와 누구를 가려낼 수 있으랴.
더우기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닌가.
공항에서 우리가 파란 색 여권으로 이들의 빨간색 여권에 우세를 보이던 시절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아니 이들이 그 빨간색을 머뭇거리지 않고 자랑할 때가 마침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 편향을 무릇 욕하지 말라.
우리도 미국의 그린 카드에 목이 매이던 시절이 오래지 않았고, 지금도 시민권이나 영주권 얻을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그걸 버릴 사람이 가령 얼마나 될까.
예전처럼 안달하거나 내놓고 자랑하는 분위기가 아닐 따름이지---.
이들은 우리와 같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그들은 이곳에 태를 묻었고 이 곳을 위하여 피땀을 흘린 조상들이 있다.
축구에서 한-중이 다툴 때 어느 쪽을 응원하겠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하고 섭섭해 할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중국에 있는 200만 조선족들의 존재라고 한다.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책을 덮으며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자부심도 가졌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참으로 넓은 가슴으로 이제는 지난 일들을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반성할 줄 알 만큼
성숙하였고, 선조의 조국에서 보여준 이런 분위기에 저자는 참으로 송구하다는 후기를 달고 있었다.
정말로 한국이 엄존하기에 그는 한국이 없다는 투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한국이 없어지려고 한다면 그는 감연히 한국은 있다고 소리쳐 부르짖었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그의 애초의 비난과 주장에 분개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사람도 있어야한다.
무조건 미안하다고만 하면 줏대도 없고 상황 논리도 접어버리는 이상한 나라의 백성들이 되거나,
반성이라는 것이 숫째 위선이거나 거짓말장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반응 속에서도 겸허히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내
보여줄 수 있기에 떳떳이 가슴을 펼 수 있는 오늘이다.
참고로 "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이 책의 목차 중에서 가슴에 집히는 것들을 가려 뽑아
보았다.
연변가무단의 녀배우같아/ 한이 서린 중국조선족 연수생/
태극기를 꽂고 왔는가/ 아가씨를 구해 주세요/
이 땅엔 우리들이 설 자리가 없다/ 이 중국거지들아/
서울이 풍기는 술 냄새/ 한국을 알게 된 것은 우리의 불행/
한국에는 멍청이가 너무 적어요/ 외국인 아르바이트는 불법/
대국과 소국의 차이/ 때렸다와 맞았다/ 한국인의 두 얼굴/
시인 천상병과 로재통령/한국은 으뜸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의 스트레스/ 겨울방학 떠돌이/내가 꿈꾸던 한국/
중국 교포 일본 쪽발이/ 그래도 좋은 한국/
잊지못할 사람들/법치국에서도 빽은 있어야돼/
한국인의 시기와 질투/ 뽐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
끝으로 연변대학의 김호웅 교수가 양쪽을 모두 어깨로 껴안고 두둔하며, 평형감각과 평상심의
한 가운데에서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중심을 잡고 말하는 논평도 든든한 글이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은 이 후기 부분까지도 꼭 놓치지 말아야 될 듯 싶다.
어제 저녁에는 김호웅 교수 부부로 부터 훌륭한 저녁을 대접받았다.
우리의 대화는 연변 문학 전반에 걸쳐있었고 김재국 작가에 대해서는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다.
지금 박사과정을 마치고 있는 이 작가는 곧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되는 모양이었다.
(봄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자 농부들이 핑구어리 나무에 매달렸다. 조선족의 희망찬 내일은
여기에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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