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탱고와 보카 축구단의 본향

원평재 2007. 3. 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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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구 도심, 그 중에서도 옛 "보카(Boca)" 항구지역을

찾으면 거기가 바로 탱고, 혹은 땅고의 본향이다.

또 지척 간에는 저 유명한 "보카 주이어스" , 마라도나를 배출한 축구단의

본거지와 그들의 그라운드가 생각보다는 초라하게 서 있었다. 

   

 

 

 

 윗쪽 두 곳은 보카 주니어스의 구장이 맞지만 아래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은

브라질리아의 구장인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보카 구장인지 지금 확실치가

않다.

 

 

 

마라도나의 보카 구장을 지나서 구 도심, 항구쪽으로 들어오니 탱고, 땅고의

고향을 코리언이 찾아왔다고 환영의 물결이 이층 발코니를 채웠다.

내가 그들을 올려다 보았다.

큰 착각이었다.

플라스틱 인형이었다.

 

 

 

 

 

탱고를 알려면 이 곳의 벽화를 이해해야 한다.

수많은 벽화는 초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출입구 역할을 한 "보카" 항구에

몰려든 부두 노동자들의 고난에 찬 삶을 그리고 있다.

민중화가, 베니또 킨케라 마르틴은 "작은 길"이라는 뜻의 이 "까미니또",

좁은 골목에 당시의 풍정을 벽화로 그려놓아서 이 곳에 있는모든 것, 심지어

노동자와 창녀의 호흡에 이르기까지 의미론적 승화를 시도하였다.

 

지금 이 길은 100미터 정도 상기 보존되고 있다.

"보카"는 본래 입, 하구라는 뜻으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기호학적 풀이를 해도 좋겠다.

이래저래 이곳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몽마르뜨르라는 이름을 얻은것도

과찬의 소산은 아니다.

 

 

이 "입"을 통하여 특히 1880년대에 건너온 남 유럽 사람들은 그들의 애환을

당시 유행한 하바나의 하바네라와 맘보에다가 브라질의 삼바를 섞고 좀더

빠른 템포를 엮어서, "밀롱가"라는 무곡으로 발전 시켜 대중화 하며 즐겼다.

그리고 종내에는 아프리카 계의 타악기가 가미되어서 탱고로 발전되었다.

이때가 1875년 경이니 탱고의 역사는 이미 1세기를 넘어섰다.

 

보카 지역은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 이민 온 저소득층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저분한 항구 도시로 보카 지역에서 탱고가 유래

했음은 곧 사회에서 버림 받은 하층민의 삶 속에서 탱고가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창녀와 노동자와 초기 이민자들이 이 항구 도시의 키 워드라고 보면 된다.

 

고달픈 일상에 지친 인간들의 고단함과 고독감을 달래 주던 음악 탱고.

정열, 낭만, 비애가 주된 테마로, 연주상의 특색도 지극히 "선율적"인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아르헨티나의 스페인 어는 본국이나 남미의 여타지역

과는 조금 틀린다.

하기 좋은 말로, "저 이탈리아 놈들이 말을 다 버려놓았어!"라고 내뱉을

만큼 남부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이 곳에서 강했다.

 

하여간 1960-70년대, 아르헨티나에 경제적 쇠퇴가 찾아오면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탱고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렇게 탱고의 침묵의 시대에 꺼져가는 탱고의 등불을 다시 살린 사람이
바로 이 시대 대표적 작곡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다.
그는 탱고에 독창적 화음의 개념을 이끌어와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으며
탱고의 정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탱고를 창조한 대가였던
것이다.
후안데 디오스필리 베르또, 카를로스 카르델 등이 빼어난 운문으로 이
정서를 고양시켰음은 물론이었다. 

  

 

 

 "보카지구"는 결국 가난한 자들의 해방구로 성장하였고 지금도 그 역사적

애환을 축구와 예술혼으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 곳에서 불태우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끊임없는 순례역정이 그 불씨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탱고를 묘사한 숱한 그림들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는 탱고 무희들이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혹하여 한 판 춤을 벌이게하고 노천 카페에서도 어지간하면

손님들과 춤판을 벌이는 아가씨들이 어슬렁거린다.

 

 

 

 

 

 

 

 

 

               가게와 카페를 겸하는 어떤 이층에서 내려다 본 거리.

             가게에는 "체 게바라"의 영상이 찍힌 티 셔츠가 불티났다.

                                 해방구다운 풍경이었다.

 

 

 

 

 

 

 

 

 

 

 

 

올드 타운의 창고와 부두는 모두 새로운 건물로 대체되고 있었다.

나와 연고가 있는 씨애틀 부두의 재개발 지역이 문득 생각났다.

 

아무튼 이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두 지역도 재개발 열기가 대단하였고

그 규모는 우리가 소형 택시로 움직이는 데에도 30분 이상이 걸리는 만큼의

긴 거리였다.

"미래"를 나타내는 빌딩 벽면의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이 곳이 부두로 사용 되었을적의 하역 시설이 지금도 역사 유물로

그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탱고의 본향을 보고나서 이제는 탱고를 열연하는 극장가로 찾아갔다.

때는 바야흐로 저녁 무렵이었다.

디너와 와인이 한정없이 나오는 곳에서 무대위의 열연을 관람하며 먹고

또 마셨다.

  

 

 

  탱고 혹은 땅고는 8시 반부터 공연되었다.

디너와 수준 있는 와인을 무제한으로 제공하여서 당연히 좀 취했다.

 

 

 

   

  

 

 

   

 

 

    

 

    

 

    

 

  

 

  

  

 

 

밤의 향연이 끝나고 낮의 일상이 돌아왔다.

아직도 거리에 누워있는 메미 같은 모습도 보이고 일찌감치 생계의 터전을

편 베짱이도 보인다.